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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인터뷰

인천사회복지 역사박물관 > 자료 > 원로 인터뷰

인천사회복지를 빛낸 인물 인터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낸, 위대한 사회복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동희 前 혜성보육원 총무

사회복지 1세대들이 일구어온 복지공동체

 

- 정돈희 원로(혜성보육원 총무) / 글 고동희(극작가)

 

복지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는 복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더욱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넘쳐나는데도 그들을 끌어안을 따뜻한 손길은 너무나 미약했다. 아이 어른이 다르지 않았고 여자 남자가 따로 없이 삶이 힘겨운 이들은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특히나 삶이 버거운 부모에게서 버려지거나 이리저리 헤매다 부모의 끈이 떨어진 아이들은 오갈 데 없이 시장통이나 골목에서 허둥거렸다. 오죽하면 자식을 버릴까마는 남의 집 대문 앞이나 고아원 앞에 두고 간 아이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30여년.’ 부모와 연이 끊어진 아이들과 살아온 세월. 세대를 이어가고 한 세기를 뛰어넘는 시간 동안 딱한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대부. 수많은 아이들을 거느린 자식부자 정돈희(77)’ . 혜성보육원의 영원한 총무이자 아버지다. 어느덧 복지계의 원로가 된 그에게서 복지의 성장과정을 들어본다. <글쓴이 주>

 

 

복지라는 말도 생소했던 1세대

 

사회복지 1세대인 정돈희 원로님께서는 복지 관련 일을 하신 지 얼마나 되셨고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는지요?

“1966년이니까 꼭 50년 전입니다. 복지 1세대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60년대에는 사회복지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때였고, 사회사업이라고 했지요. 그 당시엔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 때였어요. 처음엔 장사를 해보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았고, 우연한 기회에 인천시 사회과에 임시직 공무원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제가 사회복지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입니다.”

 

사회과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당시 인천시에 있는 32곳의 사회복지 기관이나 시설을 담당했는데, 대부분의 기관들이 고아원이었습니다. 고아원 외에도 양로원이 1, 모자시설이 2, 농아시설과 맹아원이 각각 1군데씩 있었습니다. 혼자서 서른 곳이 넘는 시설을 담당하다보니 제대로 된 지원정책이나 지도관리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보급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각 기관별로 필요한 보급품을 지원하는 데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30년 동안 아버지 같은 총무

 

혜성보육원은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는지요?

인천시 사회과에서 근무하는 내내 복지기관들만 어려웠던 게 아니라 공무원의 대우도 아주 열악했습니다. 5~6년 동안 복지업무를 맡아왔는데 형편이 말이 아니었어요. 그때 제 월급이 12천원 정도였는데, 당시만 해도 수당이나 연금 같은 지원조차 없었습니다.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할 일은 많은데 처우는 열악해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걱정하던 중에 마침 혜성보육원에서 총무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보수조건이 좋았던 점도 이직을 하게 된 큰 이유였습니다. 제가 받던 월급의 두 배가 넘는 월 25천원이었으니 차이가 컸지요. 그렇게 19722월부터 혜성보육원으로 옮겨 총무를 맡게 됐습니다.”

 

그 당시 혜성보육원의 어떤 상황이었는지요?

개인적으로는 먹고사는 문제로 이직을 하게 됐는데, 막상 혜성보육원의 살림을 들여다보니 너무나 어려운 여건이었어요. 시에서 복지업무를 하면서 보아왔던 것보다 복지기관의 현실은 훨씬 심각했습니다. 그 당시 전쟁고아와 버려진 아이들이 많아서 일정 요건만 갖추면 정부에서 고아원을 인가해줬는데, 그들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기관에 대한 지원은 양곡과 부식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마저도 충분하지 않았던 데다 시설을 운영에 필요한 재원은 기관이 알아서 마련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미군부대에서 부식과 시설개보수를 지원해준 덕에 겨우겨우 운영해가는 형편이었습니다. 또한 초창기 인천의 복지사업은 성당과 교회를 통한 선교사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인천은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오는 관문이어서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선교사들의 구제활동이 여러 복지사업에 많은 보탬이 됐고, 그렇게 시작한 복지시설들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사는 모습에 보람

 

혜성보육원에서 해오신 일들과 들려주실만한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보육원 총무를 맡고 보니 당장에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어떻게든 돌보고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제가 총무로 일해 오면서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혜성보육원의 후원회 결성과 자원봉사자 모집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뜻을 같이 해주셔서 보육원을 운영하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다른 시설에 비해 혜성보육원은 여자아이들이 입소해 있던 시설입니다. 제가 일을 시작할 당시에 125명의 원생들 중에 대부분이 학교를 다녔는데,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뒷바라지 하는 일이 원장님과 저의 가장 중요한 과제여서 학비 마련을 위해 애를 썼습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지만 아이들이 대체로 선하게 성장했고,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서로 돌봐주면서 공동체를 일구도록 지원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해야 했는데, 여자원생들이어서 바로 퇴소를 시키지 못하거나 퇴소 이후에도 돌봐야 하는 일이 왕왕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 취업을 주선하고 더러는 전세금을 마려해주거나 결혼을 주선하기도 했습니다. 퇴소한 원생의 결혼식에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면서 아버지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그렇게 결혼해서 아들딸 데리고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평생을 보낸 복지사업이 감사하고 복된 일이었다는 생각에 흐뭇합니다.”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복지사업이 진행되면서 초창기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복지 1세대로서 40년 가까이 현장에서 활동해오셨는데, 초창기와 비교해서 소회를 말씀해주신다면?

혜성보육원에서 총무를 맡아온 30년과 인천시 사회과 6여 년을 포함하면 참 오랜 세월을 현장에서 지내왔습니다. 지금은 대상별로, 혹은 사업별로 다양한 복지정책들이 실행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복지사업이 필요한 곳이 적지 않지만 제가 시작했던 초창기에 비하면 우리의 복지는 크게 성장했다고 봅니다. 다만 대상별로 사회적 변화에 따른 좀 더 세심한 복지정책과 사업들이 필요다고 보합니다. 보육원의 경우만 해도 초창기엔 전쟁고아들이 가장 많았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버림받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90년대 이후에는 이혼 등으로 가족이 해체되면서 입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한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지만 버려진 아이들을 보살피는 사회적 공공선 또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지에 대한 긍지 가져주길

 

지금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분야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복지는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유지해나가는 사회적 장치입니다. 지금은 복지에 대한 요구도 크게 늘었고 과거에 비해 복지의 분야나 사업들이 아주 다양해졌습니다. 지원이 필요한 구성원들을 위한 사회복지는 공공의 기능이자 공익적 장치입니다. 후배들이 단순한 직장으로서가 아니라 전문직으로서 보람과 긍지를 가졌으면 합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대우도 확대되었으면 하고, 사회복지 1세대들이 어렵게 일구어온 경험과 성과를 소중한 자산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특별히 바쁘게 지내지는 않습니다. 인천의 사회복지 원로 모임을 통해 지역사회를 위한 원로들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걷기운동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약속이 있어서 이동할 때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일찍 나와서 1시간 정도 걸어서 이동하는 편입니다. 걷다보면 이웃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어서 좋습니다.”

 

정돈희 해성보육원 총무가 걸어온 길 : 1939126일 인천 동구 송림동에서 출생. 충남 예산 농업 고등학교 졸업. 인천시 보사국 사회각 근무, 인천 시립도서관 근무, 동구청화수 24동 근무, 인천 해성보육원 총무로 근무. 경기도 지사상, 보건사회부장관상, 인천직할시장상, 인천직할시 시의회의장상 등 수상

 

인터뷰: 고동희(부평구문화재단 본부장)

   기    획: 이종아(인천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사회복지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