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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인터뷰

인천사회복지 역사박물관 > 자료 > 원로 인터뷰

인천사회복지를 빛낸 인물 인터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낸, 위대한 사회복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정심 前 인천세화종합복지관 관장

따뜻한 가슴으로 함께 가는 게 참된 복지

 

고정심 前 인천세화종합복지관장/ 글 고동희(극작가)

 

복지라는 말조차 생경했던 시절, 어려운 이웃들과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해온 고정심 전 인천세화종합사회복지관장. 크게 내세울만한 일을 한 게 아니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던 그녀를 사회복지에 평생을 바쳐온 이야기들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설득 끝에 만날 수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자택에서 만난 그녀는 그동안 숨 가쁘게 지내왔던 것에 비해 이제야 삶의 여유를 찾고 있다며 환하게 웃는다. 일 때문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을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고, 조용한 가운데 여전히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채워가는 고정심 전 관장의 생생한 삶과 복지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쓴이>

 

 

인생 4, 아직은 청춘

 

고정심 전 관장(이하는 고 관장)1948년생으로 어느새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감리교 목회자의 가정에서 32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부친의 목회활동에 따라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도 부모님과 형제 모두 주어진 여건에서 기독교의 사랑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자라왔다.

당시만 해도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고아들뿐만 아니라 불쌍한 어른들도 적지 않았다. 전쟁 탓에 정신이 나간 채로 봉두난발인 사람에게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놀려대고 심지어는 막대기로 찌르거나 돌멩이를 던지고 도망가는 걸 보고는 개구쟁이 아이들을 말리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는데, 나중에는 누가 놀리기만 하면 도움을 청해오곤 했었다.

성장기를 거쳐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을 운영했다. 일하는 동안에도 공부를 병행해 방통대 초등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사자격증도 갖게 됐다. 남편은 가정적이고 동네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는 자상한 사람이었다. 아이들 교육을 마치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복지관련 일을 하자는데 일찌감치 뜻을 같이 했다.

하지만 병을 얻은 남편과는 안타깝게도 일찍 사별하고 말았는데, 오히려 사회복지와의 인연을 앞당긴 계기가 됐다. 그 당시에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서 너무 오래 쉬면 슬럼프에 빠진다며 교회유치원을 맡아 달라는 부탁에 교회가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열린 교회로 나가야 한다며 복지사업을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을 해서 승낙을 받고 사회복지와 관련한 모든 일을 위임받았다.

처음에는 복지사업이 그저 좋은 일 하는 걸로만 단순하게 생각했다. 복지관 구조나 운영 등을 전혀 몰았던 상태에서 교회 부지에 복지시설을 건축하기로 하고 3년 정도 준비할 생각으로 절차 등을 알아보려고 직접 시청을 방문했다. 그런데 시에서는 굳이 큰돈을 들여서 새로 짓지 말고 운영주체가 없어서 1년 가까이 쉬고 있던 세화복지관을 맡아서 운영해달라는 제안을 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라 여기고 열심히 준비해서 19935월에 세화복지관을 개관했다.

그러나 막상 개관을 하려니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개관이 급했던 시에서는 일주일 안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학문적 이론이나 복지현장의 실천경험이 전무했던 상황이라 막막했지만 사랑을 가장 큰 밑천으로 삼고 아동,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 등 대상별로 필요한 사항을 고민했다. 복지사업의 대상인 사람들의 전 생애를 보듬어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고 관장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복지현장에 뛰어들었다. 사회복지는 학문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가슴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단순한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분명한 소명의식을 지닌 현장실천가로서의 활동이 더더욱 중요한 덕목이라는 게 고 관장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동안 공무원들의 행정지도와 종종 부딪혔다. 처음에는 시설을 운영하기에도 벅찬데 도와주지는 않고 간섭만 하는 것 같아 서운했는데 오히려 행정을 이해하면서 현장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나갔다. 그 결과 행정과 현장이 서로 소통하고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면 현장에서 실행 가능한 복지를 크게 넓힐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인천사례관리는 고 관장이 공무원들과 함께 연구해서 만든 대표적인 성과이기도 하다.

 

복지는 소통과 클라이언트 옹호와 지지로부터

 

임대 아파트를 중심으로 어려운 환경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회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단지마다 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데, 주민들은 대체로 삶의 방식들이 거친 사람들이었다. 입주 이전부터 개관이 되어 주민들을 맞이하면 더 나을 텐데 입주가 이루어진 다음에 복지관이 문을 열다보니 관계형성이 쉽지 않았다. 복지가 필요한 주민들은 복지관을 마치 분풀이 대상으로 여기는 듯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고 관장은 경찰이나 관공서마저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선 그들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보기로 작정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 대부분은 사랑의 결핍이고 주위에서 자기의 존재를 알아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과장된 횡포로 자기과시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각자 큰 상처를 안고 있어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는 생각으로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했다. 고 관장은 막말을 하며 난동을 부리는 이웃들을 차분하게 웃는 얼굴로 마주하며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게 했다. 그들의 상처를 함께 아파하고 응어리가 풀릴 수 있도록 들어주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툭하면 시비를 걸던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이웃끼리 시비가 붙어 멱살잡이를 하다가도 고 관장이 나타나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미안해했다.

주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태산인데 예산은 늘 턱없이 부족했다. 식사제공에 필요한 예산을 반영했지만 지속하기 어려워 기업의 구내식당이나 뷔페, 학교급식 등과 연계하여 지원했고, 농산물시장의 야채와 제과점의 빵도 수거했다. 복지관 직원들은 부담스러워했지만 요즘 일반화된 푸드뱅크나 푸드마켓의 원조였던 셈이다.

단지의 청소년들에게는 정서적 지원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주민들 대부분이 피해의식이 커서 아이들 또한 그런 환경에 방치되다시피 까닭 없이 위축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열등감을 회복하고 자신감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이종관 연수구립관현악단장의 도움으로 청소년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운영했다. 반신반의 하던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까지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존감을 느끼고 큰 성취감을 누릴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기관이 많아졌지만 초기에는 임금과 인권 등의 사각지대에 처해 있었다. 고 관장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주말마다 음식 나눠 먹기, 한글교실, 컴퓨터교실 등을 운영하면서 임금체불이나 학대상담을 통해 그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지원했다.

IMF를 겪으면서 실업난이 심각해져 실직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구인구직 연결사업을 개설하였고, 새벽에 일을 나가는 주민들에게는 꼭 밥을 챙겨서 대접했다. 고 관장은 이 사업으로 실업극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장관 기관상을 수상했다.

 

고 관장이 생각하는 복지정책들

 

사회복지분야는 일선 현장의 복지시설 운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 관장은 행정기관과 협의회, 시설 및 기관의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협업이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복지정책이 실천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천시 사회복지관협회 회장과 인천시 사회복지협의회 연수구지회장을 역임한 고 관장은 시설이나 기관들이 개별 사업에 그치지 않고 현안에 대한 연대가 진행되도록 꾸준히 모색해왔다. 협의회가 공동 정책과 사업을 발굴하는 구심점과 조정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임을 정례화 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했다.

고 관장은 복지의 큰 축인 행정과 복지시설의 관계도 시너지가 가능하도록 서로 지지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설과 행정은 형식적이거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모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함께 가는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시와 함께 종합복지관의 사례관리를 연구하여 공동의 매뉴얼을 개발한 성과로 인천시가 전국적인 시범사례로 지정받은 일은 복지인으로서 큰 보람이다.

고 관장은 현장의 복지사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복지관을 찾는 주민들의 대부분은 어디에서도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주민들을 만날 때에는 최고의 친절과 최대의 서비스로 그들도 누군가로부터 대우받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달라는 주문이다. 혹시라도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비치거나 복지관이 관료화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서 주민들이 복지관을 고향처럼 여기고 언제든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복지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맘껏 복지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는 지원체계의 마련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바람을 강조한다.

 

고 관장은 요즘 인생4막을 맞아 여전히 바쁘다.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지내왔던 1막은 따뜻한 시기였고, 남편을 만나 아이들을 키우며 함께 멋진 삶을 계획하던 시기가 2막이었으며, 남편 사별의 아픔을 추스르며 활발하게 복지사업을 벌이던 현장은 3막이었다. 고 관장의 멋진 4막은 현재진행형이다. 퇴임 후 여유 있는 생활로 인생의 휴가를 누리고 있다. 일에 묻혀 챙기지 못했던 자녀, 손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고 독서와 봉사활동으로 누구보다 풍성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비로소 찾은 그녀만의 시간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고정심 인천세화종합복지관장이 걸어온 길 : 19481019일 부산 수정동 출생. 배화여자고등학교 / 대전여자보육대학(배재대학) / 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과 / 인천대학교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새롬유치원장(1991-1993), 인천세화종합사회복지관장(1993-2013). 월미로타리클럽지식위원장, 인천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연수구 지회장, 연수구치매통합관리센터, 인천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이사, 인천광역시사회복지관협회 회장 등. 보건복지부장관상 수여, 인천시 제8회 사회복지상 수여, 한국사회복지관협회공로패 수여

 

인터뷰: 고동희(부평구문화재단 본부장)

   기   획: 이종아(인천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사회복지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