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검색 - 검색을 원하시는 항목을 체크하신후 검색하시면 보다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구분
전체
  • 년도
전체
  • 지역
전체
  • 기관
전체

원로 인터뷰

인천사회복지 역사박물관 > 자료 > 원로 인터뷰

인천사회복지를 빛낸 인물 인터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낸, 위대한 사회복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전완길 前 계양종합사회복지관장

복지 전문성을 강조하는

전완길 계양종합사회복지관장(호원대학교사회복지학과겸임교수)

 

시급히 해결해야 할 노인복지

전완길 계양종합사회복지관장은 인천의 원로 요양보호사이자 사회복지사다. 우리나라 1세대 사회복지사로서 계양종합사회복지관장, 인천시사회복지관협회장, 계양노인복지센터원장 등 평생을 사회복지분야에 몸담아왔다. 특히 노인복지 분야에 대해서는 지금도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전완길 관장이 노인복지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자신이 몸소 노인문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1년 전 부인과 사별했는데, 부인의 절대 재혼 말라는 유언을 지키며 살고 있다. 31녀인 자녀들과 심지어는 처가에서도 재혼을 권유했는데, 그는 한사코 거부하고 부인의 유언을 지켰다. 때문에 그는 많은 나이임에도 혼자서 생활을 꾸려가며 평소에는 손수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며 보내고 주말에는 다른 가족들과 보낸다.

이렇듯 그는 본인이 혼자 사는 노인이고, 또한 사회복지사이기에 주변의 노인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는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 힘들 때, 국가를 세운 공로자들이다. 하지만 그 공로자들에 대한 대우가 부족하다며 사회를 꾸짖는다. 이어 “OECD 회원 중 노인빈곤률이 1위에 달하며 자살률 또한 1위에 달한다. 노인들이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버는 돈은 고작 4000원이다. 지금의 노인들은 살 곳도 있을 곳도 쉴 곳도 없다. 그런 노인들은 거리로 내몰려 노숙자가 되거나 아니면 홀로 고독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이런 노인 문제를 급히 해결해야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 당연한 공로자들에 대한 처우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우연히 사회복지사의 길로

전완길 관장이 노인 문제를 비롯한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 우연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는 군산에서 고교시절을 보내며 씨름, 태권도, 합기도 등의 운동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때문에 공부와는 거리가 있었고 입시 또한 포기했다. 하지만 동기들이 대학 배지를 달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고 나는?’이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반성하고 집을 떠나 서울에 가 재수를 결심 했다고 한다.

그리고 멋진 사업가가 되겠다고 중앙대학교 사회사업학과에 입학한다. 아버지는 크게 좋아하시고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입학한 사회사업학과는 지금으로 말하면 복지학과이고 그는 그것을 모르고 경영이나 경제를 배우는 곳인 줄 알고 입학한 것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방황을 하고 열심히 놀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군대에 들어간다. 전역 후 같은 과의 고교 동기생과 3년 간 같이 살며 마음을 다잡고 충실한 학교생활을 보낸다.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곳은 가톨릭 사회복지회이다. 그곳은 메리놀 수녀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수녀복 대신 일반 정장을 입고 일했다. 상대에게 거리감이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곳에서 청소년 담당으로 일을 했다. 상담을 하거나 레크레이션이나 캠프를 담당하며 아이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주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때로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직접 기타 치면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 가정복지로 업무를 변경하고서는 당시 궁핍한 생활상 구걸하는 사람들을 재기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장사 밑천, 농사 밑천, 학자금을 지원해주는 식이었다. 이와 같이 노력하고 성과를 낸 결과 이내 그는 입사 6년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입사 15년만에 사임을 하고 인천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의 초대 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다양한 사회복지분야의 성과들

인천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는 보건복지부에서 결정한 정책으로 만들어졌으나 경제가 어려워지자 예산 삭감이 있었고 후원회나 회비등으로 자구책을 마련했다. 100만인 사랑걷기운동이나 희망백화점 사랑의 바자회 성금이 그 예다. 12년 가까이 사무국장을 하며 국가 예산 지원을 받아내었고 가톨릭 사회복지회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24시간 상담전화를 개설하였다. 당시 근무하며 새벽 2 ~ 3시에 상담이 가장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랑의 등불전화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던 이 전화에는 이성문제, 경제적 문제, 정신적 문제 등 다양한 고민을 가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그가 지금도 반복해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노인 문제의 해결의 중요성을 느끼고 노인복지센터(현 재가 노인복지센터)를 부설기관으로 설립했다. 또한, 협의회의 초기 사업에서 협의 조정 역할을 했고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전문가 교육을 진행했다.

 

12년 간의 사무국장 생활을 마친 그는 쉬지 않고 계양종합사회복지관장으로 부임한다. 시민들이 고충을 가지고 있는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복지관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여성 등의 모든 사회 취약층의 복지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하며 사랑의 도시락, 장학금 사업 등의 일을 시작했지만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해도 논 한복판에 복지관을 건립하여 사람들이 복지관을 나아가서는 복지를 만만하게 생각했고 국민들이 찾아오기도 어려운 곳에 있다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진행했던 사업 중 하나인 사랑의 도시락 사업도 큰 봉고차만을 가지고는 노인들의 주거 특성 상 좁은 골목을 통과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힘든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대우 자동차를 설득하여 소형차 2대를 얻어내기도 했으며 익명의 후원자가 나타나는 일도 있었다. 익명의 후원자는 추석 무렵 햅쌀 30포대를 기증하고서는 신분을 알려고 하지 말라. 신분노출이 되면 후원을 중단하겠다고 전했다.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후원은 계속되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은 계양에 산다는 것이다. 전완길 관장은 이런 사람이 참된 의인이며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참된 이웃이라며 이분들 덕분에 세상은 살만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완길 관장은 이렇듯 사회복지 사업이 아닐지라도 사랑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유니세프 후원을 추천했다. 그는 유니세프 후원이 자신의 사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자식에게 당부까지 했다고 말한다.

 

사회복지의 전문성 인정해야

전완길 관장은 지금의 사회복지 현실에 대해서 많은 우려를 전하며 변화가 필요하다 말한다. 사회복지는 전문분야임에도 공직을 퇴직한 관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다. 부적격자의 임명은 명백한 잘못이고 감사 등의 운영 문제 소지가 있어서 위험성이 있다.

협의회 차원에서는 중앙 및 각 시도 협의회에 사회복지 신문고가 필요하며 낙하산 인사 방지,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복지사의 권익이 보호되며 부당한 인사에 대해서는 퇴출 등으로 정의를 세워야 하고 학계, 언론계, 법조계, 복지계 등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자문단이 구성되어 사회복지사 처우 개선에 힘써야한다. 현재 시회복지사는 봉사 영역으로 취급하여 처우가 박한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복지사 이직의 높은 원인이 되고 있기에 협의회 차원에서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전완길 관장이 걸어온 길 : 19441022일 출생. 군산고등학교 / 서울중앙대학교 사회사업학과 졸업 / 1971년 인천가톨릭사회복지사 입사 1977년 부회장 승진, 1985년 사임, 1986년 인천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사무국장 입사, 1997년 계양종합사회복지관장 부임, 2002년 계양노인복지센터원장 부임, 2005년 호원대학교사회복지과겸임교수, 1990년 인천광역시장 표창(2), 1991년 법무부장관 표창, 1996년 보건복지부장관상 표창(3), 1997년 인천사회복지협의회장 공로패 수상, 1999년 법무부인천지방검찰청검사장감사패 수상, 2002년 김대중 대통령 표창

 

인터뷰: 고동희(부평구문화재단 본부장)

   기   획: 이종아(인천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사회복지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