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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인터뷰

인천사회복지 역사박물관 > 자료 > 원로 인터뷰

인천사회복지를 빛낸 인물 인터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낸, 위대한 사회복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허 돈 前 신명대단 대표이사


“비영리 목적 투명한 경영이 우리의 자랑”

 

“내가 한센병환자였다는 것에도 감사”

신명보육원 이사, 청천농장 회장직을 맡고, 세계를 돌며 선교활동 등 60여년 세월을 고스란히 사회복지에 헌신한 허돈(81) 신명재단 대표이사. 그는 노인요양원, 아동보육원, 식당 등을 운영하는 신명재단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인천사회복지의 산 역사이다. “시인이자 한센병 환자였던 고 한하운 선생님이 1952년 신명보육원을 세우신거죠. 나야 동료등과 함께 이사직을 돌아가면서 맡아 한 것뿐이지요.”

 

허 대표이사도 한센병 환자였다. 한센병은 나균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이다. 신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 또한 아픔으로 다가오는 병이다. 그럼에도 허 대표이사는 ‘모두 고맙다’고 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투병생활하기가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정부에서 비용을 다 지원해줘 오히려 고마운 마음만 있었다’고 말했다. 완쾌 된 다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아서 우리가 전국적으로 나와서 살 수 있었어요. 또 정부가 사람들에게 홍보를 잘해서, 일반인과 사회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없었어요.” 정부의 정착장려 정책에 따라 그는 청천농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신명보육원 운영에도 박차를 가했다.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성계원 문화부에서 선생 노릇을 했어요. 중학교 중퇴할 때쯤이었죠. 그 곳엔 한센병 치료를 받는 젊은 아이들이 많았어요. 애국심이 강한 최창문 원장님이 있었는데, 저를 눈여겨 본거죠. 그 때부터 아이들을 맡아서 가르쳤어요.” 종교도 한몫했다. 한하운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성계원 치안본부에서 살았던 한하운 선생님은 그 곳에서 요양생활을 하며 종교 생활도 함께 했다. 선생님 옆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을 접했다. 그 당시, 인천미군해병대사령부에서 미군 종국목사인 멜로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신앙의 영향은 나중에 신명재단이 중시하는 기독교적 가치와도 연결된다. “기독교적 정신, 믿음, 신앙이 그것이지요.”

 

그가 성계원의 문화부장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지도 했지만 한계에 봉착했다. 성계원 아이들은 국립병원에 있다는 이유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하운 선생님이 신명보육원을 설립한 이유다. 신명보육원은 여러 형태로 운영됐다. 처음에는 학부형들과 한하운 선생님이 운영위원 제도로 운영하다, 보건사회부(지금의 보건복지부)에서 정식 허가를 받은 후엔 이사 제도로 바뀌었다. 한하운 선생이 돌아가시자 그가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다.

 

신명재단 시설물 건축에 힘 써

신명재단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인천시가 재단 부지에 주택지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신명재단을 운영하면서 노인요양원, 아동보육원, 식당, 신명빌딩 등을 지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곳이 정부의 구역사업으로 넘어갔어요. 맹아학교 쪽으로 해서 반대쪽에 빌라 있는 곳이 다 신명보육원 땅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협소한 아이들의 숙소가 걱정되었다. 앞의 경작지는 재단의 자급자족을 위해 꼭 필요했다. 부단히 인천시장을 쫓아다녔다. 결국 협상이 타결됐다. 양쪽의 땅, 아파트 부지를 받는 대신 구역정리로 인해 올라간 지가는 시청에 부담하기로 했다. 다시 협상 덕에 신명재단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조그만 아동숙소만 남을 뻔 했다.

 

시설 건립을 위한 예산 마련도 만만치 않았다. 건물 앞쪽에 ‘서울가든’이라는 식당을 임대한 이유다. 이 식당은 세를 주어 10년 동안 이용하도록 하고 기부채납받기로 했다. 10년이 지난 후에 재단은 기부채납을 받고, 그것을 다시 임대했다. 임대료도 받고, 건물도 재단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수익의 일정부분은 재단에 투입된다. 이 때문에 신명재단이 다른 사회복지기관보다 시설이나 환경면에서 월등하다.

 

청천농장을 5․16 혁명 때 정부시책에 의해서 하게 된 것도 한하운 선생님의 뜻이 컸다. “역시 한 선생님은 장래를 멀리 보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농사 수익으로는 생활유지가 어려웠다. 아이들이 한하운 선생님께 각자 자유롭게 나가서 자활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안성의 부지를 팔고, 각자 80만원씩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신명빌딩, 신명보육원을 짓고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그 때 자립을 한 허돈 대표이사는 16년 동안 청천농장 조합장으로 일했다.

 

사회복지를 위한 그의 열정은 ‘신명’이라는 그라운드를 바탕으로 뻗어 나갔다. 그는 인도의 IDEA라는 미션스쿨에서 고문역할을 하고 있다. IDA는 전 세계 불우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기구이다. IDEA는 초등학교를 지어서 1년에 졸업자 200명씩을 배출하기도 한다. 20년 전, 한국에도 IDEA가 설립됐다. 그는 한국 IDEA의 발기인 중 한명이다.

 

“청렴도 조사하면 우리가 1위할 것”

좋은 일을 한다는 사회복지재단이 경영은 가끔 문제가 되었다. 그가 수십 년 동안 사회복지 일을 하고 지켜보다보니 의도와 상관없이 복지시설의 어두운 면도 보게 되었다. “이사, 감사, 회장, 대표이사까지 조직이 전부 가족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요. 부정과 비리가 만연해었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도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부정비리를 감시하고, 관선이사를 두 사람 이상을 기본적으로 파송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당장 내년부터 관선이사가 사회복지시설에 들어올 예정이다.

 

반면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신명재단을 투명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일부러 재단 안에 교회를 짓기도 했다. 신도는 대부분 요양원 할머니들이지만, 상주 목사도 있다. 씨족관계로 연합할 수 없도록 제도를 운영한다. 3개 농장에 5명씩 참여하는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실제로 신명재단은 인천시로부터 지적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는 사회단체를 대상으로 한 청렴도 조사가 실시된다면, 신명재단이 1위를 차지할 것이라 자부했다.

 

사회복지기관이 이 땅에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현 정부가 국가복지자원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보육원에 실질배당 혜택은 없어서 아쉽습니다. 물론 고령화 시대에 맞게 요양원이나 독거노인들을 위한 예산이 많이 배당되어야 하지만, 사회복지기관에도 정부가 세심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역사와 도덕교육”

오랜 시간 동안 사회복지에 공헌을 한 사람으로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는 역사교육과 도덕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역사에 대한 식견이 상당하다. 실제로 보육원에서 원생들을 대상으로 종종 역사 강연을 하고 있다. “아이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건 역사교육입니다. 최근에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지정했다는 말이 있는데, 역사는 꼭 필수과목이 되어야 해요.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보육원 아이들이 생각났는지, 잠깐 침묵이 머물렀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당시 보육원에 속 썩이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는지 물었다. “도망가고 돌아다니면 잡아오고 별 짓 다했지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잘못을 하지는 않지요.”라고 말하며 그는 엷은 미소를 띠었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신명보육원 출신들이 있다고 말했다. “인천의 명문 고등학교 회장을 하는 아이도 있어요.” 자식자랑을 하고 싶어 하는 부모님 마음과 꼭 닮은 복지시설 허 전 대표이사의 말에는 신명재단이 가족 같은 복지시설임을 확신케 하기에 충분했다.

 

■ 허돈 대표이사가 걸어온 길: 1928년 경기도 평택시 원곡면에서 출생, 평택중학교 1회 졸업, 서울-경기 양계조합 이사, 대한양계협회 이사, 한성장로회 회장, 한성협동회 중앙이사, 예장 한남노회 장로회 회장, 사회복지재단 신명재단 대표이사. 농협중앙회 감사패 수상, 대통령 표창 수상.

 

■ 인터뷰: 박선홍(인하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초빙교수)

   기    획:이종아(인천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사회복지연구원)

   촬    영:심재홍(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원우(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