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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인터뷰

인천사회복지 역사박물관 > 자료 > 원로 인터뷰

인천사회복지를 빛낸 인물 인터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낸, 위대한 사회복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정심 前 인천세화종합복지관 관장
따뜻한 가슴으로 함께 가는 게 참된 복지   고정심 前 인천세화종합복지관장/ 글 고동희(극작가)   복지라는 말조차 생경했던 시절, 어려운 이웃들과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해온 고정심 전 인천세화종합사회복지관장. 크게 내세울만한 일을 한 게 아니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던 그녀를 사회복지에 평생을 바쳐온 이야기들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설득 끝에 만날 수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자택에서 만난 그녀는 그동안 숨 가쁘게 지내왔던 것에 비해 이제야 삶의 여유를 찾고 있다며 환하게 웃는다. 일 때문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을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고, 조용한 가...
고동희 前 혜성보육원 총무
“사회복지 1세대들이 일구어온 복지공동체”   - 정돈희 원로(前 혜성보육원 총무) / 글 고동희(극작가)   ‘복지’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는 복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더욱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넘쳐나는데도 그들을 끌어안을 따뜻한 손길은 너무나 미약했다. 아이 어른이 다르지 않았고 여자 남자가 따로 없이 삶이 힘겨운 이들은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특히나 삶이 버거운 부모에게서 버려지거나 이리저리 헤매다 부모의 끈이 떨어진 아이들은 오갈 데 없이 시장통이나 골목에서 허둥거렸다. 오죽하면 자식을 버릴...
한효순 前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장
시 쓰는 사회복지사 한효순 前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장   다른 사람을 위한 행복한 삶 시를 좋아했던 문학소녀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교편을 잡았다. 서른이 가까워왔을 때 문득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슨 공부를 할까 생각하다가 사회복지와 인연을 맺는다. 한효순 前 관장이 사회복지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그 당시에 제 삶을 60평생이라 보면 인생의 절반인 30년을 나를 위해 살아왔으니 남은 절반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고, 행복하게도 평생을 복지 분야에서 일하게 됐죠.”   사회복지를 선택하고 어려운 이들을 도우...
전완길 前 계양종합사회복지관장
복지 전문성을 강조하는 전완길 前 계양종합사회복지관장(호원대학교사회복지학과겸임교수)   시급히 해결해야 할 노인복지 전완길 前 계양종합사회복지관장은 인천의 원로 요양보호사이자 사회복지사다. 우리나라 1세대 사회복지사로서 계양종합사회복지관장, 인천시사회복지관협회장, 계양노인복지센터원장 등 평생을 사회복지분야에 몸담아왔다. 특히 노인복지 분야에 대해서는 지금도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전완길 前 관장이 노인복지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자신이 몸소 노인문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1년 전 부인과 사별했는데, 부인의 ‘절대 재혼 말라’는...
송상균 사회복지법인 향진원 원장
범사에 감사하라   나의 아버지 고 송성준원장 송상균 원장은 아버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아버지(考송성준 원장)는 1917년 6월 20일 황해도 연백에서 출생해, 평양고등보통고등학교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연백수리조합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1952년 당시 6.25 전쟁으로 고아가 되어 굶주리는 아이들을 맡아 양육하는 보육원에서 봉사하게 되었고, 1957년 4월 23일, 전쟁으로 폐허가 돼 사회전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당시 사재를 털어 지금의 향진원을 설립하고 전쟁고아를 돌보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61년에 강남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75년 3월 5일부터 1991년 12월까지 컴패션(compassio...
유필우 前 인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사회복지는 말보다 가슴으로 하는 것”     천사같은 사회복지사들 보고 큰 감동 “사회복지가 과거엔 고아원, 양로원 등 시설에서 어려운 분들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사회복지의 개념이 보다 넓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즉, 사회의 어두운 곳과 모순,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갈등을 푸는 것도 그 주요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인의 경우 요양시설을 통해 보호하거나 집에 요양보호사를 파견하여 보호해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도와드릴 수 있는지, 어떻게 삶의 만족을 높혀드릴 수 있는지 등도 생각하는 광의의 복지정책의 필요성이...
허 돈 前 신명대단 대표이사
“비영리 목적 투명한 경영이 우리의 자랑”   “내가 한센병환자였다는 것에도 감사” 신명보육원 이사, 청천농장 회장직을 맡고, 세계를 돌며 선교활동 등 60여년 세월을 고스란히 사회복지에 헌신한 허돈(81) 신명재단 대표이사. 그는 노인요양원, 아동보육원, 식당 등을 운영하는 신명재단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인천사회복지의 산 역사이다. “시인이자 한센병 환자였던 고 한하운 선생님이 1952년 신명보육원을 세우신거죠. 나야 동료등과 함께 이사직을 돌아가면서 맡아 한 것뿐이지요.”   허 대표이사도 한센병 환자였다. 한센병은 나균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이다. 신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사...
김영주 성촌재단 대표이사
장애인시설 한국형 모델 구축의 산파역 - 김영주 ‘성촌재단’ 대표이사 “집 한 채 없어도 후회는 없다” 정년을 마쳤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도 한 채 남지 않았다. 사실상 사회복지 실천전문가로는 1세대인 김영주 전 ‘성촌의집’ 원장(현 ‘성촌재단’ 대표이사)은 그렇게 실천현장에서의 사회복지인생을 마쳤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복지사업을 한다는 것은 자선 사업이 대부분이었지요. 저같이 처음부터 복지시설을 맡아 이렇게 한 복지시설을 책임지고 운영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삶에 후회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복지에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전쟁이후 국내에 주둔한 미군 ...
김병호 前 신명재단 대표이사
  "한센병환자에서 사회복지 큰 어른으로"   한하운 선생의 교육결단이 탄생 배경  김병호 신명재단 대표이사. 그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신명재단의 1세대다. 11살 때 한센병이 발병돼 14살 때 치료하려 동인 요양소에 들어간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신명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나병환자’라는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자란 그에게는 남다른 아픔이 있었다. 그의 희망은 재단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남다른 흥망성쇠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회복지원 하고는 달라요. 다른 곳은 사회복지 사업에 뜻이 있는 분들이 시작한 것이지만, 신명재단은 처음엔 교회 부설로 요양소...
김득린 송암복지재단 대표이사
   “인천을 사회복지의 명품도시로”   어머니가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 김득린 송암복지재단 대표이사는 법학을 전공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했다. 법대를 나왔음에도 흔한 사법고시도 보지 않고, 공무원 생활도 하지 않고 사회복지를 선택했다. 그 이유부터 물었다.   “법과 관련된 일 보다는 소외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불우한 사람을 위해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15, 16살 때쯤 한국전쟁 통에 피난을 갔던 어머니께서 전북 군산 시청에서 부녀과장을 하시면서 고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지요. 거리에서 헤매며 죽어가...